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콜라보
보자기 아티스트 서원주 (Wonju Seo) 작가
(인터뷰: 맘앤아이 편집부, 2023년 2월)
한국 전통 보자기의 아름다움을 콜라주, 바느질, 회화 등 다채로운 방식을 통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미술의 한 장르를 묵묵히 개척 중인 기하학적 추상 텍스타일 작가이자 보자기 아티스트 서원주 작가. 아주 오래전 그저 일상용품이었던 보자기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현대 예술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한 그녀의 자유로운 시각과 이를 뒷받침해온 그녀의 작업이 무척 궁금했다. 또한,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온고지신’을 바탕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중인 그녀의 창작 활동이 세계적 위상이 절정에 달한 K-컬처에 새로운 방향성의 단초를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원주 작가를 맘앤아이가 서면으로 만나보았다.
맘앤아이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맘앤아이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뉴욕과 뉴저지를 기반으로 비단, 모시, 삼베와 같은 한국의 천연 섬유와 여러 가지 혼합 매체를 이용하여 기하학적 추상 텍스타일 예술로서 현대 보자기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작가 서원주입니다.
홍대 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셨는데 섬유 예술로 전환하시어 직장에서 일하시다가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미대 학생이었던 80년대 중반, 대부분의 학생이 그렇듯 졸업 후 진로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작가의 길을 걷는 대신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했고, 졸업과 동시에 공채를 통해 회사에 입사한 후 패키지 디자이너와 커머셜 실크 페인팅 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1998년에 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위해 미국에 왔고, 2005년 결혼을 하고 나서 짧은 기간이었지만, 오랫동안 해보고 싶었던 조각보 만드는 법을 안금주 선생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집에서 작은 크기로 시작한 조각보 만들기가 갈수록 작업량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작품 규모도 커졌습니다. 2007년부터는 다수의 공모전을 통해 예술 기관, 박물관 및 갤러리 전시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2012년과 2018년, ‘뉴저지주 아트 카운실(New Jersey State Council on the Arts)’로부터 ‘펠로우십(Individual Artist Fellowship)’을 두 차례 수상하였고 동시에 Grants를 받아 조각보의 현대적 해석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받은 Grants로 첼시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던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작가님께는 ‘보자기 작가’라는 특별한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예전에 보자기는 물건을 싸거나 음식을 덮을 때 사용하던 생활용품이었어요. 기하학적 추상 텍스타일 예술로서 현대적인 보자기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첫 번째 동기는 한국의 전통 보자기 중 하나인 조각보의 심미감에서 받은 감동 때문이었습니다. 1988년 미대 졸업 후 한국에서 우연히 보게 된 전통 보자기 전시에서 유물 보자기의 아름다운 대비 색의 조합과 창의적 구성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었던 일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두 번째는 전시 관람을 통해 예술의 거대한 포용력과 무한 변신의 가능성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어떤 특정한 사물을 바라볼 때 기존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을 하게 되면 완전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독특한 작업 과정으로 그리는 행위와 만드는 행위를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품으로서뿐만 아니라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아이템들까지도 구상할 수 있는 창작 영역의 확장성과 자유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작품 구상 시 페인팅, 드로잉, 컴퓨터 디자인은 제가 이러한 자유로운 사고를 확장하는데 기본적으로 많은 부분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 봄에 코리아 소사이어티 초대로 ‘서원주: 여행기’ 전을 선보이셨는데요. 모티브는 어디에서 얻으셨나요? 또한 개인전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이 궁금합니다.
‘여행기(Travelogue)’란 개인의 여행 경험을 글로 표현하고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저에게 ‘여행기’는 직물과 여러 기법을 활용하여 가상 혹은 기억 속 풍경과 자연의 이미지를 추상 예술로 시각화하는 긴 과정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현재 미국에 살면서 제가 체험한 두 문화를 배경으로 보자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각적이고 감성적인 예술가로서 여정을 나타냅니다. 지난 3월부터 두 달간 이루어졌던 전시, ‘여행기’는 제이 오 문화 예술 수석 디렉터에 의해 큐레이팅 되었으며, ‘아시아 위크 뉴욕’과 ‘뉴욕 타임스’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여행기’라는 큰 주제 아래 크게 네 가지 소주제인 “설경(White Wonderland),” “나의 창으로: 바다, 하늘, 그리고 바람(Through My Window_Ocean, Sky and Winds),” “드로잉(Map Drawing),” “현대 보자기(Contemporary Bojagi)”, 네 가지 시리즈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전시는 최근작뿐 아니라 이전 작품들도 포함하고 있었는데요. 이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개념들, 즉 고대와 현대, 전통과 모더니즘, 아날로그와 디지털,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 사이에서 일종의 연결고리로서 제 역할과 앞으로 전개될 작품의 방향 제시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5년에 제작한 “설경(White Wonderland),” 2021년에 제작한 “나의 창으로: 바다, 하늘, 그리고 바람(Through My Window_ Ocean, Sky and Winds),” 그리고 2022년에 제작한 ‘보자기 드레스(Bojagi Dress)’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설경”은 어느 저녁 폭설이 내린 후 하얀 설국으로 변한 서울에 대한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 대형 설치 작품은 길이 26피트, 폭 32피트로 전시 공간에 맞춰 특별 제작되었고, 전통 보자기 제작 방식 중 하나인 칠보문전보(여의주문보)를 응용하여 노방이라는 얇은 한국 비단을 공들여 접고 꿰매어 만든 2,300개의 직물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5년 찰스 왕 센터 진진영 관장의 총괄 지휘 하에 이루어진 그룹전, ‘Origami Heaven’를 위해 제작되었고, Aileen Jacobson에 의해 뉴욕타임스에 그룹전 리뷰로 소개되었습니다. 현재, 스토니브룩 대학 찰스 왕 센터 스카이 라이트 갤러리에 영구 소장품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의 창으로: 바다, 하늘, 그리고 바람”은 오래전 남편과 함께 여행했던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제 추상 페인팅 이미지를 담은 실크 오간자를 이용,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각각 세로 135인치와 가로 55인치 크기의 네 개 판넬로 구성된 이 설치 작품은 페인팅, 사진, 컴퓨터 디자인 기법을 손바느질 같은 기존의 작업 방식에 접목하여 비교적 긴 공정을 거쳐 완성하였습니다. 회화적 기법을 작업 과정에 끌어들였다는 측면에서 제 표현 방식에 전환점을 맞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커미션 프로젝트는 2020년 뉴욕의 워터폴 맨션 갤러리의 케이트 신 관장에 의해 진행되었고, 한국 ‘그랜드 하야트 호텔, 제주 드림타워’에 의해 영구 소장되어 현재 호텔 로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보자기 드레스(Bojagi Dress)’는 한국의 오방색(청, 백, 적, 흑, 황)을 주제로 조각보의 전통적 대비 색 조합과 패턴을 모던 한복과 접목해 제작한, 입을 수 있는 작품(Wearable Art)’입니다. 다섯 가지 패션 아이템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2022년 정영양 박사님이 특별 고문으로 자문을 맡았던 ‘조지 워싱턴 대학 박물관과 텍스타일 박물관’에서 열렸던 전시, ‘한국 패션: 궁중에서 런웨이까지(Korean Fashion: From Royal Court to Runway)’에 참가하기 위해서 일년 반의 제작 기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그 전시는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125년 한국의 의복 역사를 미국에 소개하고자 기획되어, 전통 의상부터 퓨전 한복, 하이패션, 스트릿 패션과 K팝 패션까지 선보였습니다. 또한, 제 작품을 포함하여 조각보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현대 의상 세 점도 함께 선보였습니다. ‘한국 패션: 궁중에서 런웨이까지’ 전은 한국 국제 교류 재단(KF) 지원으로 리 탈봇(Lee Talbot)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큐레이팅했습니다.
특별히 제작 과정에서 힘들었던 일 그리고 작가로서 행복했던 일도 듣고 싶습니다.
대규모의 설치 작업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작업의 시작부터 완성된 작품이 전시 공간에 성공적으로 설치될 때까지, 저에게는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한국에 있는 재료상들로부터 한 번에 천이나 실과 같은 재료들을 대량 구입하거나 공장에서의 인쇄와 같은 특수 공정을 거쳐야 할 때 재료와 운송을 포함한 비용 부담과 시간에 대한 강박감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작업 과정에서 오차가 생길 경우 전시나 행사 스케줄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항시 가지고 있는 것도 힘든 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최선을 다한 작품들이 멋진 공간에서 관람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오래도록 받을 때 작가는 비로소 안도감과 함께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늘 깨닫는 것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와 헛걸음질들이 오늘의 저를 작가로 성장하도록 만들어준 밑거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랫동안 미국의 대학교, 박물관, 기관 등 여러 곳에서 보자기 워크숍을 진행하셨는데요. 워크숍에 참석한 참가자들의 호응도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2012년부터 시작해서 2022년까지 십 년 동안 대부분 저의 워크숍은 미국 현지의 대학교, 박물관, 그리고 한국 문화 예술 관련 기관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진행했던 워크숍은 2016년 이정희 교수의 주관 하에 수원에서 개최된 ‘국제 보자기 포럼(Korea Bojagi Forum)’ 산하 전시와 관련된 워크숍이었습니다. 미국 현지에서 제 워크숍에 참가하시는 분 중에는 박물관 관련 종사자, 섬유 예술 작가 및 은퇴 후 조각보 만들기를 취미로 배우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작년에 뉴욕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워크숍과 워싱턴 D.C.의 ‘조지 워싱턴 대학교 박물관 그리고 텍스타일 박물관’ 워크숍은 공고가 나가자마자 마감되어 대기자 명단을 만들어야 할 만큼 많은 재미 교포와 미국인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텍스타일 박물관 워크숍 참가자 스무 명 중 한인 2세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인이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앞으로의 계획이나 바람이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어 서구 사회에서 살고 있는 저는 한국 문화와 보자기 문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활동을 통해 개인적으로도 문화적인 정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늘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전시와 행사를 통해 1989년 제가 서울의 작은 갤러리에서 전통 유물 보자기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깊은 감동을 모든 관람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고대 한국의 생활용품 중 하나였던 보자기가 현대 미술로 재탄생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있는 작가로서 저의 여정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